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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 PLANNING · 콘텐츠 기획

무대 위의 가면, 기획서 속의 얼굴

엔터테인먼트에는 두 개의 페르소나가 있다. 아티스트가 무대에서 쓰는 가면과, 기획자가 팬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는 얼굴. 이 둘은 어떻게 만나는가.

STUDIO REALIVE 에디토리얼 · 2026.06.28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로마 연극에서 배우가 쓰던 '가면'이다. 무대 위에서 배우는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 관객 앞에 선다. 그 가면이 곧 페르소나였다.

흥미롭게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이 단어는 정반대 방향으로 두 번 쓰인다. 하나는 무대 위 아티스트가 쓰는 가면 — 아티스트의 콘셉트와 캐릭터다. 다른 하나는 기획자가 팬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는 얼굴 — 기획 방법론으로서의 페르소나다. 같은 단어, 정반대의 방향. 그리고 좋은 콘텐츠는 이 둘이 정확히 맞물리는 지점에서 태어난다.

첫 번째 페르소나 — 아티스트가 쓰는 가면

엔터테인먼트는 본질적으로 페르소나의 산업이다. 무대 위의 아티스트는 일상의 그 사람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콘셉트, 세계관, 무대 위의 캐릭터 — 이 모든 것이 아티스트의 페르소나를 구성한다.

K-POP은 이 페르소나를 가장 정교하게 다루는 분야 중 하나다. 앨범마다 바뀌는 콘셉트, 세계관 서사 속 캐릭터, 멤버별로 부여된 역할. 팬은 이 페르소나를 통해 아티스트의 세계로 들어간다.

페르소나는 거짓이 아니다. 진심을 더 또렷하게 전달하기 위해 선택된 형식이다.

최근에는 이 가면이 사람의 얼굴을 떠나기도 한다. SM의 버추얼 아티스트 나이비스(Naevis), 서브컬처의 Plave·이세계아이돌처럼, 페르소나 자체가 콘텐츠의 주인공이 되는 사례다. 여기서 페르소나는 '한 사람이 쓰는 가면'을 넘어, 기획·디자인·기술이 함께 빚어내는 독립된 캐릭터가 된다.

페르소나가 세계관과 맞물려 산업을 움직인 사례도 있다. 가상의 4인조 밴드라는 콘셉트로 출발한 버추얼 아티스트 고릴라즈(Gorillaz)는 캐릭터 서사 자체를 음악·뮤직비디오·전시로 확장하며 20년 넘게 페르소나를 갱신해 왔다. 에스파(aespa)가 현실 멤버와 가상 아바타(ae)를 한 세계관 안에 묶은 것도, 페르소나를 단일 인물이 아니라 확장 가능한 구조로 설계한 경우다. 가면이 정교할수록, 그것을 받아 줄 팬의 얼굴도 그만큼 또렷해야 한다.

두 번째 페르소나 — 기획자가 그리는 얼굴

방향을 돌려 객석 쪽을 보자. 콘텐츠를 기획하는 사람에게 페르소나는 전혀 다른 의미다. 여기서 페르소나는 '우리 콘텐츠를 경험할 사람'을 구체적인 한 인물로 그려낸 것이다.

"20대 후반, 5년 차 팬, 주로 모바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월급의 일부를 굿즈와 콘서트에 쓰며, 가장 답답해하는 건 글로벌 동시 공개가 시차 때문에 새벽이라는 점." 이렇게 한 사람을 또렷하게 세우면, 모호했던 '타깃 고객'이 살아 있는 얼굴이 된다.

기획자는 이 페르소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사람은 무엇에 열광하는가, 무엇에 답답해하는가(Pain Point), 우리 콘텐츠를 어디서 처음 만나 어떤 경로로 빠져드는가(고객 여정). 막연한 '팬들'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 사람'을 향해 기획할 때, 비로소 경험은 날카로워진다.

'모두를 위한 콘텐츠'는 대개 누구의 마음에도 닿지 못한다. 한 사람을 또렷이 그릴 때, 역설적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닿는다.

두 페르소나가 만나는 지점

여기서 이 글의 핵심에 닿는다. 엔터테인먼트 기획이란 결국 아티스트의 페르소나(첫 번째)와 팬의 페르소나(두 번째)를 정밀하게 연결하는 일이다.

아티스트가 어떤 가면을 쓰고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그 메시지를 가장 깊이 받아들일 팬은 어떤 사람인가. 이 둘이 어긋나면 아무리 화려한 콘텐츠도 헛돈다. 멋진 콘셉트가 정작 그것을 사랑할 사람에게 닿지 못하고, 정교한 타깃 분석이 정작 아티스트의 진짜 매력을 비껴간다.

좋은 기획자는 두 페르소나 사이의 통역사다.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팬의 언어로 번역하고, 팬의 갈증을 콘텐츠의 형태로 되돌려 준다. 이머시브 공연이든 팬 플랫폼이든 버추얼 콘텐츠든,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이 두 얼굴의 만남이 있다.

두 얼굴이 어긋날 때

이 만남이 어긋나는 방식은 의외로 흔하다. 첫 번째는 아티스트의 페르소나만 비대해지는 경우다. 콘셉트와 세계관은 정교한데, 정작 그것을 받아들일 팬이 누구인지에 대한 그림이 없다. 화려한 무대가 허공에 대고 말하는 셈이 된다.

두 번째는 그 반대다. 데이터로 그린 팬의 얼굴은 또렷한데, 거기에 맞추느라 아티스트의 페르소나가 납작해진다. '팬이 좋아할 만한 것'만 좇다 보면, 정작 그 아티스트를 특별하게 만든 결이 닳아 없어진다.

잘 팔리는 콘텐츠와 오래 사랑받는 콘텐츠는 다르다. 그 차이는 대개 두 페르소나의 균형에서 갈린다.

세 번째 어긋남은 더 미묘하다. 둘 다 또렷한데, 둘을 잇는 콘텐츠의 형식이 엉뚱한 경우다. 깊은 서사를 가진 아티스트를 짧은 챌린지 영상에만 태우거나, 가벼운 즐거움을 원하는 팬에게 무겁고 진지한 세계관을 들이미는 식이다. 두 얼굴을 무엇으로 연결할 것인가 — 그 형식의 선택까지가 기획자의 몫이다.

페르소나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검증하는' 것

마지막으로 한 가지 오해를 짚는다. 페르소나는 책상 앞에서 상상으로 만들어 내는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그렇게 만든 페르소나는 기획자 자신의 편견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엔터테크 시대의 페르소나는 데이터로 검증된다. 팬 플랫폼이 남긴 행동 기록, 커뮤니티의 반응, 구매와 이탈의 패턴이 페르소나에 살을 붙인다. 상상으로 출발하되 데이터로 다듬고, 다시 그 페르소나를 가설 삼아 콘텐츠를 시험한다. 페르소나는 한 번 그리고 끝나는 그림이 아니라, 계속 갱신되는 살아 있는 문서다.

사실 페르소나라는 도구 자체를 미심쩍어하는 시선도 있다. UX 업계 일각에서는 "20대 후반, 5년 차 팬" 같은 인구통계형 페르소나가 그럴듯한 캐릭터놀음에 그치기 쉽다며, 차라리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해내려 하는가"라는 과업(JTBD, Jobs To Be Done)으로 고객을 가르는 편이 낫다고 본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핵심은 페르소나냐 과업이냐의 택일이 아니라, 그 인물이 실제 행동 데이터에 닻을 내리고 있는가다. 닻 없는 페르소나는 도구가 아니라 장식이다.

두 페르소나를 잇는 감각은 강의로 설명되기보다 실습으로 길러진다. 그런 자리로 SM UNIVERSE·STUDIO REALIVE·SMHRD 컨소시엄이 K-POP 이머시브 콘텐츠 기획자 양성과정을 두고 있다. 페르소나 설계와 Pain Point 도출, 고객 여정 지도에서 출발해 실제 산출물까지 만들어 보는 13주 일정이다. 궁금하다면 모집 페이지를 열어 보면 된다.


무대 위의 가면과 기획서 속의 얼굴. 정반대를 향하는 듯한 두 페르소나는, 사실 같은 질문의 양면이다. 우리는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엔터테인먼트가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산업인 한, 이 질문은 결코 낡지 않을 것이다.

Tags   #페르소나   #콘텐츠기획   #팬경험   #아티스트콘셉트   #UX   #엔터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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