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이 객석이 될 때
온라인 콘서트는 객석을 못 채운 시절의 임시방편이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다른 무대였을까.
거실 소파에 앉은 사람이 응원봉을 든다. 화면 속 아티스트가 무대 끝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손에 쥔 봉의 색이 무대 조명과 같은 빛으로 물든다. 텔레비전 앞 4평 남짓한 공간이, 잠깐 동안 수만 석 공연장의 한 좌석이 된다. 몇 해 전이라면 어색했을 이 장면은, 이제 전 세계 수십만 가구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일이 되었다.
팬데믹은 공연장의 문을 닫게 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문 하나를 열어젖혔다. 갈 곳을 잃은 무대가 카메라 앞으로 옮겨 갔고, 그 과정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 자라났다. 오프라인 공연을 '대신하던' 화면이, 어느 순간 오프라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재가 아니라 다른 종(種)이다
온라인 콘서트를 이야기할 때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그것을 '공연장에 못 간 사람을 위한 차선책'으로 여기는 시선이다. 화질 좋은 중계, 집에서 보는 콘서트 — 이 정의에 머무는 한, 온라인 라이브는 영원히 오프라인의 그림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잘 만든 온라인 콘서트를 본 사람은 안다. 그것은 작아진 공연이 아니라, 다르게 설계된 공연이라는 것을. 카메라는 객석 맨 앞줄보다 가까이 아티스트에게 다가가고, 무대는 물리 법칙을 무시한 채 우주로도 심해로도 변한다. 현장에서는 무대 한쪽만 보던 관객이, 화면 앞에서는 연출자가 고른 가장 좋은 시점을 따라간다. 같은 곡을 보더라도 경험의 문법 자체가 다르다.
온라인 콘서트는 오프라인을 옮겨 담은 그릇이 아니다. 처음부터 카메라를 전제로 태어난, 별개의 무대 형식이다.
그래서 이 형식을 잘 다루는 기획자는 '어떻게 하면 현장처럼 보일까'를 묻지 않는다. 그들은 거꾸로 묻는다. '현장이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화면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카메라가 곧 연출이 된다
오프라인 무대의 연출이 공간을 다루는 일이라면, 온라인 무대의 연출은 시점(視點)을 다루는 일이다. 무엇을 보여 주고 무엇을 감출지, 어느 순간 얼굴로 파고들고 어느 순간 무대 전체로 물러설지 — 화면 안에서는 카메라의 선택 하나하나가 연출의 언어가 된다.
여기에 가상 무대가 더해진다. 실제 세트로는 구현할 수 없는 배경이 실시간 그래픽으로 펼쳐지고, 아티스트는 무너지는 도시 위에서도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에서도 노래한다. 증강현실 오브제가 무대 위를 떠다니고, 카메라가 그 사이를 가른다. 물리적 제약이 사라진 무대에서 상상의 폭은 예산보다 발상에 더 크게 좌우된다.
멀티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일부 서비스에서는 팬이 직접 화면을 고른다. 누군가는 전체 무대를, 누군가는 한 멤버만 따라가는 화면을 선택한다. 연출자가 짠 '하나의 시점'과, 관객이 고르는 '나만의 시점'이 한 무대 안에 공존하게 된 셈이다.
오프라인 무대가 모두에게 같은 장면을 준다면, 온라인 무대는 관객 수만큼의 장면으로 갈라질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다. 라이브가 '하나의 완성된 연출'이라는 오래된 전제 자체를 흔드는 일이다. 연출자는 이제 단 하나의 정답 컷이 아니라, 여러 시점이 모두 말이 되도록 무대를 설계해야 한다.
4평과 지구 반대편을 동시에 채운다
형식의 혁신만큼 중요한 것이 접근성의 혁신이다. 오프라인 공연장은 아무리 커도 좌석 수가 천장이다. 표를 구하지 못한 팬, 비행기를 탈 수 없는 팬, 그 도시에 살지 않는 팬은 늘 무대 바깥에 남았다.
온라인 콘서트는 이 천장을 걷어 냈다. 한 번의 공연에 전 세계 수십만, 때로는 그 이상의 관객이 동시에 접속한다. 서울의 무대를 상파울루와 파리와 자카르타가 같은 시각에 함께 본다. 물리적 좌석이라는 제약이 사라지자, '몇 석을 파느냐'가 아니라 '몇 개의 시간대를 끌어안느냐'가 새로운 기획 변수가 되었다.
시차는 도전이자 기회다. 어떤 공연은 지역별 회차를 따로 열어 각 시간대의 황금 시간을 노리고, 어떤 공연은 단 한 번의 동시 접속으로 '전 세계가 같은 순간을 공유한다'는 일체감을 무기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보기를 길게 열어 시차의 손실을 메우는 방식도 흔하다. 수익 구조 역시 단일 티켓을 넘어, 한정 굿즈 결합과 멤버십 연동, 다시보기 판매로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핵심은 분명하다. 온라인 콘서트의 경제학은 '좌석의 희소성'이 아니라 '동시 접속의 규모'와 '경험의 결합'에서 나온다. 이는 오프라인과는 다른 셈법이며, 다른 셈법은 다른 기획을 요구한다.
현장감의 결핍을 무엇으로 메우나
물론 화면이 못 주는 것이 있다. 옆 사람과 동시에 터뜨리는 함성, 공연장을 가득 메운 공기의 떨림, 끝나고 함께 빠져나오는 인파의 여운. 같은 자리에 몸을 둔다는 그 감각만큼은 카메라가 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온라인 콘서트의 기획은 이 결핍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데서 진짜 승부가 난다. 응원봉을 공연 신호에 연동해 거실의 빛을 무대와 같은 색으로 물들이고, 실시간 채팅으로 전 세계 팬의 반응이 화면 옆을 흐르게 하며, 특정 미션을 함께 달성하면 다음 무대의 연출이 바뀌도록 설계한다. 혼자 보는 화면을 '함께 보고 있다'는 감각으로 바꾸는 장치들이다.
현장감은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재발명하는 것이다. 같은 공기를 못 준다면, 화면만이 줄 수 있는 다른 연결을 만들면 된다.
흥미로운 역설이 여기 있다. 거실에서 혼자 보는 관객이, 때로는 공연장 3층 구석에 앉은 관객보다 더 가깝게 아티스트와 연결되었다고 느낀다. 가장 가까운 카메라 컷, 내 손안의 응원봉, 내가 고른 시점 — 이 사적인 친밀함은 오히려 현장이 주기 어려운 경험이다. 결핍을 메우려던 시도가, 어느새 오프라인에 없던 강점이 된 셈이다.
한계, 그리고 아직 쓰이지 않은 문법
그렇다고 온라인 콘서트가 모든 것을 해결한 형식은 아니다. 접속 끊김 한 번이 수만 명의 경험을 동시에 무너뜨릴 수 있고, 화면이라는 매개는 집중의 밀도를 흩뜨리기 쉽다. 거실에는 초인종이 울리고 가족이 지나가며, 그 어떤 연출도 시선을 붙들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무엇보다, '함께 있다'는 감각을 기술로 흉내 낼수록 그것이 흉내라는 사실 또한 또렷해진다.
그러나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은, 그만큼 다룰 거리가 많이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온라인 콘서트는 영화의 문법도, 오프라인 공연의 문법도 그대로 쓸 수 없는 형식이다. 카메라와 가상 무대와 실시간 인터랙션을 엮어, 화면 너머의 관객을 어떻게 '참여자'로 세울 것인가 —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절반도 쓰이지 않았다.
이 새로운 무대 문법을 정면으로 다뤄 보려는 사람에게 마침 맞춤한 자리가 있다. SM UNIVERSE·STUDIO REALIVE·SMHRD 컨소시엄이 운영하는 K-POP 이머시브 콘텐츠 기획자 양성과정은 팬경험 설계에서 출발해 온라인 라이브와 가상 무대, 실시간 인터랙션을 하나의 기획으로 엮는 과정을 실제 산출물과 함께 다룬다. 화면 너머의 무대를 직접 설계해 보고 싶다면 모집 페이지에서 결을 살펴볼 수 있다.
거실이 객석이 되는 일은, 한때 어쩔 수 없는 차선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거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 이상 차선이 아니다. 카메라가 무대를 다시 쓰고, 응원봉이 화면과 손을 잡고,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같은 순간에 같은 빛으로 물든다. 무대가 객석으로 걸어 나오는 시대에,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화면이라는 무대를, 우리는 아직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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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IO REALIVE. 본 글은 에디토리얼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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