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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하지 않는 스타의 시장

무대 위에 살아 있는 사람이 없는데도 팬덤은 모이고 매출은 쌓인다. 버추얼 아티스트 시장은 하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법을 가진 여러 층위로 나뉘어 있다.

STUDIO REALIVE 에디토리얼 · 2026.06.28


한 팬이 콘서트장의 응원봉을 흔든다. 다른 팬은 새벽 세 시까지 라이브 방송 채팅창에 머문다. 또 다른 팬은 굿즈 상자를 개봉하는 영상을 찍어 올린다. 익숙한 팬덤의 풍경이다. 다만 이들이 사랑하는 스타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 그 스타는 '실재하지 않는다'.

물리적 몸을 가지지 않은 아티스트가 거대한 팬덤과 매출을 만든다. 이 문장은 더 이상 미래형이 아니다. 메인스트림에서는 SM의 버추얼 아티스트 나이비스(Naevis)가, 서브컬처에서는 Plave와 이세계아이돌이, 글로벌에서는 일본의 Hololive가 각자의 무대에서 팬을 모은다. '실재하지 않음'이 약점이 아니라 자산이 되는 시대. 그러나 이 시장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면 핵심을 놓친다. 버추얼 아티스트 시장은 단일하지 않다. 거기엔 분명한 층위가 있다.

하나의 시장, 세 개의 지형

버추얼 아티스트라는 말로 한데 묶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비즈니스 모델도 팬과의 거리도 전혀 다른 세 갈래가 보인다.

메인스트림 — 기획사가 설계하는 IP. 나이비스로 대표되는 영역이다. 음원·뮤직비디오·공연이라는 정통 아이돌 문법을 따르되, 주인공이 가상 존재라는 점이 다르다. 나이비스만 해도 aespa의 세계관 속 캐릭터에서 출발해 독립했고, 목소리는 여러 성우의 음성을 합성해 빚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정통 아이돌 문법 위에 생성형 AI와 가상 제작 기술이 겹쳐진 셈이다. 기획사가 세계관과 비주얼, 음악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거대한 제작·운영 인프라가 뒷받침한다. 팬과의 거리는 일반 아이돌과 비슷하게 '동경'에 가깝다.

서브컬처 — 팬덤이 함께 키우는 친밀형. Plave와 이세계아이돌이 여기 속한다. 정교하게 완성된 완제품으로 던져지기보다, 라이브 방송과 실시간 소통 속에서 팬과 함께 성장하는 모델이다. 방송 사고마저 콘텐츠가 되고, 어설픔조차 매력이 된다. 팬과의 거리는 '동경'보다 '동행'에 가깝다.

글로벌 — 거대 IP 플랫폼. Hololive로 대표되는 영역이다(니지산지 등 같은 층위의 경쟁 사무소도 있다). 수십 명의 버추얼 탤런트를 거느린 사무소가 하나의 플랫폼처럼 작동한다. 개별 캐릭터의 매력과 함께, 소속사 전체가 하나의 브랜드이자 생태계를 이룬다. 라이선싱과 글로벌 IP 확장이 핵심 동력이다.

같은 '버추얼'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누군가는 완성된 무대를 동경하고 누군가는 미완의 성장을 함께한다. 시장을 가르는 진짜 축은 기술이 아니라 팬과의 거리다.

세 층위는 경쟁자라기보다 서로 다른 욕구에 답하는 별개의 시장에 가깝다. 그래서 각각의 성공 공식도 다르다.

왜 하필 지금인가

버추얼 아티스트라는 발상 자체는 새롭지 않다. 1990년대에도 사이버 가수가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에야 시장이 되었을까. 세 가지 변화가 맞물린 결과다.

기술의 문턱이 낮아졌다. 과거 영화 스튜디오의 전유물이던 모션캡처와 실시간 렌더링이, 이제 작은 팀도 다룰 수 있는 도구가 됐다. 표정과 손끝까지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를 매일 방송할 수 있게 되면서, '특별한 이벤트'였던 가상 공연이 '일상의 콘텐츠'로 바뀌었다.

플랫폼이 무대를 깔았다. 유튜브와 라이브 스트리밍, 슈퍼챗과 후원 시스템은 버추얼 아티스트에게 최적의 환경이다. 물리적 무대를 빌리지 않아도, 전 세계 팬이 같은 시간 같은 채팅창에 모인다.

팬덤의 감각이 달라졌다. 캐릭터에 진심으로 몰입하고, 그 서사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문화는 이미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통해 충분히 학습돼 있었다. 버추얼 아티스트는 그 감각이 음악과 공연으로 흘러든 결과다.

돈은 어디서 도는가

세 층위는 매출을 만드는 방식부터 다르다. 이 차이를 모르면 시장을 잘못 읽는다.

메인스트림은 전통 아이돌 산업의 수익 구조를 따른다. 음원과 음반, 광고와 화보, 그리고 대형 공연. 가상 존재이기에 오히려 시공간의 제약 없이 글로벌 동시 공연이나 무한한 콘셉트 변신이 가능하다.

서브컬처는 팬과의 친밀도가 곧 매출이다. 슈퍼챗과 멤버십, 정기 후원처럼 '관계에 지불하는' 모델의 비중이 크다. 여기에 팬이 직접 만들고 퍼뜨리는 2차 창작이 IP의 도달 범위를 무료로 넓힌다.

글로벌 거대 IP는 라이선싱이 핵심이다. 굿즈·게임·콜라보·이벤트로 캐릭터 자산을 끝없이 변주한다. 한 명의 탤런트가 아니라 플랫폼 전체가 매출을 분산해 떠받치는 구조다.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비용의 결함이 아니라 설계의 자유다. 늙지 않고, 스캔들에 흔들리지 않으며, 동시에 여러 무대에 설 수 있는 스타 — 그 자유를 어떻게 매출로 옮기느냐가 기획의 핵심이다.

그늘 — 가면 뒤에는 사람이 있다

다만 이 시장에는 분명한 그늘도 있다. 성장 서사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질문들이다.

진정성 논쟁. '실재하지 않는 스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버추얼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연기 뒤에는 결국 사람(이른바 '나카노히토(中の人)', 안에 든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존재를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디서부터 캐릭터로 봉인할 것인가는, 팬덤의 신뢰와 직결된 민감한 설계 문제다. 캐릭터와 사람 사이의 경계가 흔들릴 때, 팬덤은 가장 크게 동요한다.

운영 의존성. 가상 존재일수록 운영자에게 더 깊이 의존한다. 안의 사람이 떠나거나 건강을 잃으면, 완벽해 보이던 캐릭터도 멈춘다. 화려한 외형 뒤에서 모션·보이스·라이브 운영을 떠받치는 인력의 노동 강도와 지속가능성은 자주 가려진다.

캐릭터의 수명. 사람은 나이 들고 은퇴하지만 캐릭터는 늙지 않는다. 그것이 강점인 동시에 함정이다. 변하지 않는 캐릭터가 변해 가는 팬의 마음을 얼마나 오래 붙잡을 수 있는가. 번아웃과 매너리즘은 가상 존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이 그늘들은 시장의 약점이라기보다, 이 시장을 다루는 기획자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질문에 가깝다. 화려한 무대를 설계하는 일과, 그 무대를 오래 지속시키는 일은 전혀 다른 능력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 시장을 설계하는가

결국 버추얼 아티스트 시장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기획이다. 어떤 층위를 겨냥할 것인가, 팬과 어떤 거리를 둘 것인가, 어떤 모델로 매출을 만들고 그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 이 모든 결정이 모여 하나의 IP를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 층위를 가로질러 시장 전체를 읽는 안목을 한곳에서 익히기가 의외로 어렵다는 것이다. 음악은 음악대로, 라이브 운영은 운영대로, IP 비즈니스는 또 따로 배워 왔다. 흩어진 조각을 '하나의 버추얼 기획'으로 통합하는 훈련은 대체로 현장에서 부딪히며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흩어진 조각을 하나의 버추얼 기획으로 꿰는 자리가 필요하다면, 한 가지를 덧붙여 둔다. SM UNIVERSE·STUDIO REALIVE·SMHRD 컨소시엄의 K-POP 이머시브 콘텐츠 기획자 양성과정은 13주 동안 시장의 층위를 읽고, 팬과의 거리와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해 실제 산출물로 옮겨 보는 흐름으로 짜여 있다. 모집 페이지에서 커리큘럼의 결을 들여다볼 수 있다.


실재하지 않는 스타가 실재하는 팬덤을 만든다. 이 역설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게 된 지금, 남는 질문은 단 하나다. 그 스타를, 그리고 그 스타와 팬 사이의 거리를 누가 설계할 것인가. 무대 위에 사람이 없어도, 그 무대를 짓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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