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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 PLANNING · 콘텐츠 기획

기획자의 도구상자 ① —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법

좋은 기획은 답을 잘 내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풀어야 할 문제를 제대로 찾아내고, 날카롭게 정의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 일을 돕는 방법론의 지도를 펼친다.

STUDIO REALIVE 에디토리얼 · 2026.06.28


기획 회의의 흔한 풍경 하나. 누군가 "팬 참여가 떨어진다"고 말하면, 다음 순간 테이블 위로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이벤트를 하자, 굿즈를 풀자, 라이브를 늘리자. 빠르고 활기차다. 그리고 대개 빗나간다. 정작 팬이 무엇 때문에 멀어졌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잘못 잡으면, 그 뒤의 모든 노력은 정성껏 빗나간다. 그래서 노련한 기획자는 해법으로 달려가기 전에 멈춘다. 우리가 풀려는 문제가 진짜 문제가 맞는가. 이 글은 그 멈춤의 기술, 곧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단계의 방법론을 다룬다. (②편에서는 그렇게 정의한 문제로부터 아이디어를 만들고 검증하는 도구를 다룬다.)

이미 우리가 쥐고 있는 네 개의 도구

이 저널은 그동안 문제를 들여다보는 도구를 하나씩 펼쳐 왔다. 팬을 구체적인 한 사람으로 그리는 페르소나, 그 사람이 어디서 답답해하는지를 짚는 Pain Point, 인지에서 이탈까지 관계 전체를 조망하는 고객 여정 지도(CJM), 그리고 하나의 화면·경험 안 동선을 분 단위로 해부하는 유저 저니(UJM).

이 넷은 이미 충분히 다뤘으니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자. 이 도구들은 각각 따로 노는 기법이 아니라, 더 큰 방법론 지도 위의 좌표들이다. 이 글은 그 위에 한 겹을 더 얹는다. 개별 도구를 잘 쓰는 법이 아니라, 그 도구들을 어디에 놓고 어떤 순서로 꺼낼지를 알려 주는 지도다.

디자인 씽킹 — 발견 단계의 전체 지도

가장 널리 알려진 지도는 IDEO와 스탠퍼드 d.school이 대중화한 디자인 씽킹이다. 공감(Empathize) → 정의(Define) → 발상(Ideate) → 프로토타입(Prototype) → 테스트(Test)의 다섯 흐름. 이름은 거창하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사람을 먼저 이해하고, 문제를 정의한 다음에야 비로소 답을 만든다는 순서다.

여기서 앞의 두 단계, 공감과 정의가 바로 이 글의 영토다. 앞서 말한 네 도구는 대부분 이 구간에서 쓰인다. 페르소나와 CJM으로 공감하고, Pain Point로 문제의 윤곽을 잡는다. 흔한 실패는 이 두 단계를 건너뛰고 곧장 발상으로 점프하는 것이다. 공감 없는 아이디어는 기획자 자신의 취향일 뿐이다.

디자인 씽킹의 진짜 메시지는 다섯 단계의 이름이 아니라, 답보다 문제가 먼저라는 순서다.

더블 다이아몬드 — 두 번의 발산과 수렴

디자인 씽킹을 더 선명하게 그린 그림이, 영국 디자인 카운슬이 제시한 더블 다이아몬드다. 마름모 두 개가 나란히 놓인 모양으로, 각 마름모는 넓게 벌렸다(발산) 좁히는(수렴) 한 번의 호흡을 뜻한다.

앞쪽 다이아몬드는 '올바른 문제를 찾는' 구간이다. 처음엔 가능한 한 넓게 벌린다. 팬을 관찰하고, 데이터를 뒤지고, 불만의 조각들을 모은다(발산). 그런 다음 그 혼돈을 하나의 또렷한 문제 정의로 좁힌다(수렴). 뒤쪽 다이아몬드는 그 문제로부터 해법을 찾는 구간 — ②편의 영토다.

1편이 머무는 곳은 앞쪽 다이아몬드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자주 무너진다. 발산을 충분히 하지 않아 뻔한 문제만 떠올리거나, 수렴을 못 해 문제가 열 개로 흩어진 채 다음 단계로 떠밀려 간다. 넓게 벌린 뒤 단 하나로 좁히는 이 두 박자가, 발견 단계의 척추다.

듣지 말고 보라 — 관찰과 JTBD

문제를 넓게 벌리는 단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의외로 단순하다. 관찰이다.

팬에게 "무엇이 불편하냐"고 물으면, 대개 자신이 이미 아는 불편만 답한다. 정작 결정적인 갈증은 본인도 말로 옮기지 못한다. 그래서 에스노그래피(ethnography), 곧 현장 관찰이 필요하다. 팬이 콘서트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줄을 서고, 어느 순간 휴대폰을 들어 올리고, 어떤 장면에서 옆 사람과 눈을 맞추는지.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면, 설문이 결코 잡아내지 못하는 진짜 문제가 드러난다.

여기에 한 겹을 더하는 렌즈가,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널리 알린 Jobs-to-be-Done(JTBD)이다. 핵심 질문은 이렇다. 팬은 이 콘텐츠를 '고용'해 어떤 일을 시키려 하는가. 사람들은 콘서트 티켓 자체를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존재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증거"를 고용한다. 디어유 버블을 구독하는 팬은 메시지 기능이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고용한다.

팬은 제품을 사지 않는다. 자기 삶의 어떤 일을 대신 해 줄 존재를 고용한다. 그 '일'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문제 정의의 절반이다.

이 렌즈로 보면 경쟁 상대도 달라 보인다. 팬의 새벽 시간을 두고 우리 라이브가 경쟁하는 상대는 다른 아티스트가 아니라 수면일 수도 있다. 같은 '일'을 두고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지를 물으면, 문제의 진짜 윤곽이 잡힌다.

근본으로 파고, 기회로 되묻기 — 5 Whys와 HMW

관찰로 문제의 조각을 모았다면, 이제 좁혀야 한다. 이때 쓰는 두 도구가 5 Whys와 How Might We다.

5 Whys는 도요타 생산방식에서 비롯된, "왜"를 다섯 번 되묻는 단순한 기법이다. "입덕 직후 팬이 식는다" → 왜? "초반에 할 게 없다" → 왜? "신규 팬용 콘텐츠 동선이 없다" → 왜? … 표면의 증상에서 출발해 한 꺼풀씩 벗기면, 처음 보였던 문제와 전혀 다른 뿌리에 닿곤 한다. 엉뚱한 뿌리에 물을 주지 않으려면, 증상이 아니라 원인까지 파 내려가야 한다.

뿌리에 닿았다면, 마지막으로 그 문제를 기회 질문으로 뒤집는다. 이것이 How Might We(HMW),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다. "신규 팬이 초반에 이탈한다"는 진단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입덕 첫 주의 적막을 설렘으로 채울 수 있을까"로 바꾸는 순간, 문제는 막다른 벽에서 열린 문이 된다. 너무 좁으면 답이 하나로 정해져 버리고, 너무 넓으면 막막해진다. 그 사이의 적당한 폭을 찾는 것이 HMW의 기술이다. 잘 벼린 HMW 한 문장이, 곧 ②편 발상 단계의 출발선이 된다.

베끼지 말고, 구조를 읽어라

발견 단계 내내 곁에 두는 습관이 하나 더 있다. 레퍼런스다. teamLab의 몰입형 전시, Sphere의 거대한 구체 스크린, ABBA Voyage의 디지털 아바타 공연, Beyond LIVE의 온라인 무대. 좋은 사례는 늘 영감을 준다.

다만 레퍼런스를 보는 방식이 갈린다. 표면을 보면 베끼기가 되고, 구조를 보면 배움이 된다. "Sphere가 거대한 화면을 썼으니 우리도 큰 화면을"은 표면이다. "Sphere는 관객을 영상 안에 들여놓아 '구경'을 '체험'으로 바꿨다"는 구조다. 전자는 예산만 태우고, 후자는 우리 맥락에 옮겨 심을 수 있다.

레퍼런스에서 훔쳐야 할 것은 결과물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가 하는 구조다.

도구는 사고를 대신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펼친 것들 — 디자인 씽킹, 더블 다이아몬드, 관찰, JTBD, 5 Whys, HMW — 을 보며 든 생각이 있을 것이다. 이걸 다 순서대로 돌리면 좋은 기획이 나오는가. 아니다.

방법론은 정답을 뱉는 기계가 아니다. 흩어진 생각을 얹어 정리하는 격자일 뿐이다. 같은 5 Whys를 돌려도 누가 묻느냐에 따라 닿는 뿌리가 다르고, 같은 관찰을 해도 무엇을 보느냐는 보는 사람의 감각에 달렸다. 도구마다 약점도 다르다. 5 Whys는 원인을 하나의 사슬로만 좇기 쉬워 여러 원인이 얽힌 문제 앞에서 시야를 좁히고, 디자인 씽킹은 절차만 충실히 밟으면 통찰이 나온다는 착시를 주기도 한다. 도구는 사고의 빈자리를 비추어 줄 뿐, 그 자리를 채우는 건 끝내 사람이다.

방법론은 생각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생각을 흘리지 않게 받쳐 주는 격자일 뿐이다. 격자가 그림을 그려 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 지도들은 정해진 절차가 아니라 꺼내 쓰는 도구상자로 대해야 한다. 어떤 날은 관찰 하나로 충분하고, 어떤 프로젝트는 더블 다이아몬드 전체를 두 바퀴 돌아야 한다. 무엇을 언제 꺼낼지를 아는 것 — 그 판단이 결국 기획자의 실력이다.

관찰과 JTBD로 팬의 진짜 문제를 캐내고 더블 다이아몬드로 그것을 한 문장의 정의로 좁히는 손기술은 글보다 현장에서 빨리 는다. SM UNIVERSE·STUDIO REALIVE·SMHRD 컨소시엄이 운영하는 K-POP 이머시브 콘텐츠 기획자 양성과정은 바로 이 발견 단계를 실제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를 소재로 13주에 걸쳐 굴려 보게 한다. 결이 맞는다면 모집 페이지를 살펴보아도 좋겠다.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일은 화려하지 않다.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발상 회의보다 느리고, 결과물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 잡은 문제 위에 세운 모든 것은, 아무리 정교해도 결국 빗나간다. 그래서 노련한 기획자는 답을 서두르는 대신 문제 앞에 오래 머문다. 다음 ②편에서는, 그렇게 벼려 낸 문제를 들고 아이디어의 영토로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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